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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정받지 못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SSD 광장 2009. 4. 21. 18:36

인정받지 못한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

전자신문 | 입력 2009.04.21 09:30

 

[쇼핑저널 버즈] 대한민국은 인터넷을 세계에서 두 번째로 개발한 국가이다. 대한민국 인터넷의 아버지인 카이스트 전길남 교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의 노력을 발판으로 대한민국은 인터넷 강국이 되었지만 정부와 언론은 그를 대우해 주지 않았다. 쓸쓸한 정년퇴직 후 그를 영웅으로 인정하며 받아준 곳은 대한민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국가의 미래가 밝기 위해서는 과학자를 꿈꾸는 어린이들이 많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가에 큰 기여를 한 과학자를 대우해야 한다.



전길남 교수는 박정희 시대 해외 과학자 귀국 정책으로 돌아온 1호 과학자이다. 박정희 대통령은 먹을 것이 없던 시절 외국에 나가있는 과학자들에게 조국으로 돌아와 일 해줄 것을 주문한다. 이때 그가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장 먼저 조국으로 돌아오자 많은 과학자들이 그를 따라 귀국한다.

전길남 교수는 귀국 전 빈트 서프와 함께 인터넷을 개발했다. 빈트 서프는 미국에서 인터넷을 개발한 공로로 영웅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전 세계로부터 '인터넷의 아버지'라고 칭송받고 있는 인물이다. 귀국 후 전길남 교수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인터넷을 개발하며 대한민국에 인터넷을 보급했다. 당시 후진국으로만 알았던 대한민국이 인터넷을 개발하자 가장 놀란 곳은 일본과 중국이었다. 일본과 중국 과학자들은 서둘러 전길남 교수를 찾아와 기술을 전수받았고 그들 나라로 돌아가 인터넷을 보급한다.

전길남 교수는 과학자로 인터넷을 개발했을 뿐 아니라 인터넷 보급을 위해 박사 과정에 있던 자신의 제자들을 사업가로 키워냈다. 그의 제자들은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에 좋은 조건으로 쉽게 취직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제자들에게 위험을 감수하고 힘들고 어렵지만 국가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라 했다고 한다.

그의 제자들이 만든 대표적인 회사는 '아이넷'이다. 아이넷은 현재 사라졌지만 국내 최초의 인터넷 전문 회사였다. 현재 '인터넷 기업 협회' 회장으로 있는 허진호 박사가 창업한 회사였다. 지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인터넷 1세대들의 상당수가 아이넷을 통해 인터넷을 처음 접했다.

전길남 교수는 대한민국을 인터넷 강국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정부로부터 대우도 받지 못했고 그 흔한 언론취재도 거의 받지 못해 알아주는 이가 거의 없었다. 카이스트 교수 정년퇴직 때 주목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정년퇴직 후 갈 곳 없는 그를 불러 준 곳은 일본이었다. 전길남 교수는 현재 게이오 대학교 석좌교수로 있다. 자기들에게 인터넷을 가르쳐 준 것에 대한 작은 보답이라고 한다.

청소년들은 이공계 진학을 꺼리고 있고 우리의 꿈나무들은 더 이상 미래의 꿈이 과학자라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정부와 언론은 순수 과학이 무너지고 있다고 호들갑이다. 하지만 어두운 연구실에서 새벽까지 연구해 국가에 기여한 과학자들에게 우리 사회가 얼마나 관심을 가졌는지 생각해 보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